기도가 우선사역입니다/ SEED USA 대표 박신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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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드선교회 작성일19-08-07 07:36 조회4,9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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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적인 기도
“기도가 우선사역입니다”
기도가 사역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도를 어떤 사역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나 도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기도가 다른 어떤 사역보다 앞선 사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 안에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 빠지는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열두 사도는 일곱 집사를 택해 구제의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제안합니다(행 6:4). 사도들에게 기도는 말씀 사역만큼 중요한 우선적인 사역이었습니다.
기도를 영적 호흡, 또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기도 해야 하지만, 기도의 또 다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마 6:33).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역시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필요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로 성숙할 때 기도는 사역의 차원으로 변화됩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들과 함께했던 모든 성령의 역사는 그들의 기도 사역에 기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삼 년에 걸친 제자훈련이 열매를 맺었다면, 그래서 제자들이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었다면, 그 비결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가르치기만 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기도하시고 또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요 4:34)”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기도의 목적도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요 17:4). 제자들이 삼 년 동안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마다 항상 들었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요? 자기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예수님의 기도였습니다(마 26:39). 아버지의 뜻을 끊임없이 구하는 예수님의 기도는 사역 자체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들이 40일간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예수님의 기도가 예수님의 삶이요, 사역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할 베드로에게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너를 위해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눅 22:32). 예수님께서 그때 한 번만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또 베드로만 위해서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삼 년 동안 날마다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그 증거입니다. 저들이 하나가 되고, 세상에서 보전되어 저들을 통해 세상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해 달라고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단 한 번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삼 년 동안 날마다 소원으로 아버지께 드려졌습니다. 늘 예수님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기도의 내용을 익숙히 들었습니다.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히 7:25). 마침내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의 소원이 되었고 기도의 목적이 되었습니다(행 1:13-14). 예수님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중보기도는 사역적인 기도입니다.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교회 중고둥부에서 토론대회를 열었습니다. 주제가 “학생회 부흥을 위해 기도가 먼저냐, 전도가 먼저냐?”였습니다. 기도가 먼저라는 그룹과 전도가 먼저라는 그룹으로 나누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전도가 먼저라는 그룹은 기도만 하고 전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학생 수가 늘어날 수 있느냐 했고, 기도가 먼저라는 그룹은 기도해야 전도할 능력을 얻게 되니 기도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당시 학생들 가운데 아무도 기도하거나 전도하는 학생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말로만 기도와 전도를 외쳤을 때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 교회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시는 전도사님들이 교육부 각 부서 담당 교역자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신학교에 기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신학교 뒷동산에서 누군가 철야 기도를 시작했는데 한 명, 두 명 늘어나서 수많은 신학생이 밤새 기도하며 성령의 은혜를 받는 영적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때 은혜받은 전도사님 한 분이 교사들에게 주일 저녁 예배를 마친 후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예배 후 저녁 9시에 시작하면 밤 11시가 넘어서야 마쳤으므로 처음에는 두, 세 사람만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불이 붙기 시작하니까 20명이 모이더니 급기야는 40명이 되었고, 점점 늘어나 마침내 모든 교사가 참석했습니다. 그 기도의 불이 학생들에게 붙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불은 전도의 불로 붙었습니다. 유초등부 학생이 두 배가 되고, 중고등부 학생도 두 배가되었습니다. 그러자 교육관이 좁아서 불편하였습니다. 주일마다 예배실과 교실이 부족하여 아우성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토요일 밤에 교회당 옆에 있는 빈 땅에 가마니를 깔고 철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추운 겨울 토요일마다 학생들의 야외 철야 기도회가 계속되었습니다. 급기야 당회가 모였습니다. 당시 1970년대 말은 에너지 파동으로 경제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당회는 교육관 건축을 결정했습니다.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온교회가 합심하여 아예 새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교사기도회가 교회 부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사역이 있습니다. 선교지에도 많은 사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사역이 우선입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서 40일을 머물렀고, 40년간 목이 곧은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회막에서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요나의 니느웨 전도에 앞서 물고기 뱃 속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했던 오순절 교회의 시작에는 열흘간의 다락방 기도가 먼저 있었습니다. 바울은 회심 후 삼 일간 금식기도를 하였고, 안디옥교회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선교를 시작하기 전에 주를 섬겨 금식한 기도 사역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었으며, 쉽게 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드린 사역적인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역에 앞서 겟세마네의 기도 사역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생애가 기도 사역으로 점철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기도 사역에 우선순위를 두어 선교지에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아 우리를 부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선교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